다시, 아이폰

5년간 사용해오던 블랙베리를 마지막으로, 다시 아이폰으로 돌아왔다.

2023년 5월 29일 문장 개선
2022년 4월 25일 초안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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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사용해 오던 블랙베리를 마지막으로, 다시 아이폰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블랙베리를 사용할 일은 없을 것 같고, 아마 블랙베리의 운명도 여기까지가 마지막일 듯싶다. 오래간만에 최신 스마트폰으로 바꾸고 나니 삶의 질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어느덧 스마트폰 생태계는 더욱 발전했고, 이제 좋은 스마트폰은 사치재가 아니라 필수재에 더 가까운 영역으로 들어온 거 같다. 게다가 맥북-아이패드-아이폰-애플 워치로 이어지는 애플 패밀리를 완성하고 나니 이렇게 해야만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 앱들을 다시 만나게 된 점도 너무 반갑다. 그중에서 최고의 앱 2가지를 추천해 본다.

1. Things by Cultured Code

나는 2008년에 Things 첫 번째 버전을 처음 구매했다. 이후 최신 버전인 3까지 계속 구매해온 충성 고객이다. 아이폰에서 안드로이드로 건너갈 때 주저했던 것도 Things 때문이었는데, 왜냐하면 이 회사는 윈도우는커녕 안드로이드 버전도 끝까지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안드로이드에서는 Microsoft To Do 같은 앱(과거 Wunderlist)과 병행해야 했는데, 매우 불편했다. 마지막까지 To Do로 넘어가지 못했고, 병행하면서 버텼다. 아이폰으로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한 일도 Things를 설치하는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애플 워치에서는 음성 인식으로 빠르게 할 일을 추가하는 기능이 있어, 운전 중이나 아이폰을 꺼내 입력하는 것조차 힘든 급한 순간에 매우 유용하다. Things와 첫 만남 이후 거의 15년간 매 업데이트마다 결제해서 사용해오고 있다. 여전히 최고의 GTD 앱이자 내 아이폰에서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필수 앱이다. 그리고 내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함께 하는 앱이다.

2. Bear by Shiny Frog

Evernote에서 시작된 ‘뇌수의 분실’은 최근 Notion으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꾸준히 긴 글 쓰기를 하는 내게 Notion의 블럭 단위 편집은 적절한 기술은 아니었다. 실제로 긴 글을 써보면 속도도 느리고 불편한 점이 많아서 글 쓰기 플랫폼으로는 낙제점에 가깝다. Evernote를 대체하려면 완성도 높은 동기화 외에도 글 쓰기에 좋은 환경을 함께 제공해야 하는데 이 둘을 완벽하게 제공하는 앱은 흔치 않았다. 그런데 Bear는 Markdown을 중심으로 하는 매우 훌륭한 글 쓰기 환경을 제공한다. Evernote의 불완전한 편집 기능이나 Notion의 느리고 불편한 블럭 단위 편집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뿐만 아니라 애플의 iCloud를 사용하기 때문에 온라인 동기화도 문제없다. 물론 이를 위해 매 년 결제해야 하지만 비용은 Evernote의 1/3에 불과하다. 좋은 도구는 습관을 바꾼다. Notion을 이용할 때는 불편해서 글을 거의 쓰지 않고 저장소 용도로만 활용했는데, Bear로 바꾸자마자 다시 매일 글을 쓰고 있다. 무엇보다 일지 중심의 메모장 용도로 제격이다. 건강 기록, 금융 거래 정리, 구매할 책 목록, 세차 기록, 출장 준비물 같은 꾸준히 업데이트가 필요한 로그성 기록들을 Bear에 업데이트하고 있다. 급한 메모도 문제 없다. 맥, 아이폰, 아이패드, 애플 워치 어디서든 입력이 가능하고 실시간으로 동기화 된다. 주로 긴 내용을 맥에서 입력하고 목적지에 도착해 아이폰으로 확인하거나, 애플 워치로도 가능하다. 하지만 Things와 마찬가지로 윈도우, 안드로이드는 지원할 생각이 없다. 안드로이드로 건너간 후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는 점이 내내 아쉬웠는데, 아이폰으로 건너오자마자 바로 18,000원을 내고 유료 구독을 재개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메모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이 두 앱의 공통된 특징이 있는데 독일, 이탈리아 유럽에서 개발한 앱이라는 점이다. 대규모 웹 서비스가 중심인 미국 회사와 달리 유럽은 아직도 데스크탑 앱이 중심인 소규모 공방 같은 회사가 꽤 된다. Things, Bear가 대표적이고, LaunchBar 같은 제품도 그렇다. LaunchBar는 오스트리아에서 개발됐을 뿐만 아니라 30년 가까이 꾸준히 개발될 정도다. Things도 내가 첫 번째 버전을 구매한 게 벌써 15년쯤 됐고, Bear도 7년이 넘는다. 1년이 머다 하고 새로운 제품이 쏟아지는 IT 업계에서 한결같은 꾸준함을 보여주는 유럽산 제품들은 그야말로 장인 정신이란 무엇인가를 잘 보여준다. 앞으로 Things, Bear가 얼마나 더 지속될진 모르겠지만 지금처럼만 계속해서 장인 정신을 발휘해준다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구매할 것이다. 이미 15년, 7년을 함께 해왔다. 이 인연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나 또한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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